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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벚꽃 출사 Part 1] 경복궁의 광화문과 흥례문을 지나 근정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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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외출을 했습니다^^

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이였던 날들이 잠시 주춤했던 주말이였습니다. 그래서, 제목처럼 사진에 취미를 붙히기 시작한 친구와 단둘이 출사(?)를 다녀오기로 급하게 약속을 잡았었지요. 차를 끌고 그 친구네 집으로 이동합니다.

 

 

 

 

 

여의도 윤중로는 이미 벚꽃이 만개했네요. ^^; 벚꽃을 보니 괜시리 가슴이 두근두근 거립니다.ㅎㅎ

 

 

 

나름 추억이 많은 여의도 거리를 다시 보니, 기분이 센치해집니다. 참 사진 찍기 좋은 기분이네요 ㅋㅋ

 

친구를 픽업하고, 어디로 출사를 갈까 이제서야 고민해봅니다. 그리고, 제일 만만한(?) 경복궁으로 결정~! 광화문으로 설렁 설렁 이동합니다.

 

주차까지 완료하고 광화문 광장으로 가보니...흠...왠 정경들이 왜 이리 많은겨...ㅡㅡ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광장에서 테스트 촬영을 몇장 해봅니다. ^^;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으로 이동하던 중, 친구가 전에 제가 담았던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어디서 찍었냐는 물음에 마침 이 근처라 같이 가보자 했지요. 아래 링크는 전에 이 곳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담았던 경복궁 야경 포스팅입니다. 약 2년 전 이야기네요 ^^;

 

 

이 곳이 바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황토마루정원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풍경입니다. 그런데...이 곳에도 정경이 배치되어 있더군요. ㅡㅡ 그리고는 이 곳에서 촬영을 하면 안됩답니다. ㅡㅡ^ 이유인 즉, 낮에는 청와대가 보이기때문에 DSLR 카메라는 촬영하지 말래요 ㅜㅠ 대신해 핸드폰 촬영을 가능하답니다. 요새 DSLR 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나...뭐가 다르다고...여튼 핸드폰 촬영은 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몇장 담아봤어요.

 

스마트폰으로 담은 파노라마~^^; 세상 참말로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카메라로 여러장 찍어서 컴퓨터로 합성해야 했는데...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뚝딱 그자리에서 파노라마 사진을 합성하니 말입니다.

 

저희는 다시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원래 목적지였던 경복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지요.

 

정말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광화문입니다욧~!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입니다. 광화문은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이었기 때문에 다른 궁궐의 정문에 비해 그 규모와 격식 면에서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또한 광화문은 담장 끝 동쪽과 서쪽에 각각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두어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석축에 세 개의 홍예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도록 하였습니다.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때를 알리는 데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이처럼 경복궁이 조선왕조의 법궁이라는 점은 광화문을 비롯한 성문의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궁의 문들은 낮은 단 위에 문을 세우지만 경복궁의 문은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홍예문을 내서 마치 성곽의 문과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그 중에서도 홍예문을 셋이나 내서 가장 격식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광화문이 법궁의 정문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궁성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으나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부서지고 석축은 탄흔 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입니다.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 가량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습니다.ㅜㅠ 뿐만 아니라 원래의 광화문 자리에서도 14.5미터 가량 뒤로 물러나 지금의 자리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원형을 잃어버린 광화문을 복원하고자 2006년부터 광화문 철거작업을 시작해 3년 8개월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0년 8월 15일 완공되었습니다.

화강암으로 육중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이층의 문루를 얹어 멀리 조망하기 좋을 뿐 아니라 궁궐 정문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단에 있는 3개의 아치형 출입문은 경복궁이 조선의 정궁이라는 위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돌로 만든 기단 위에는 흙을 구워 벽돌처럼 만든 '전돌'로 나지막한 담을 둘렀는데, 여기를 장식한 팔괘문양은 조선조 궁궐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네요.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00075&cid=42856&categoryId=42856

 

따뜻날 날씨여서 그런지 사람들도 엄청 많았었습니다.

 

 

 

 

 

 

 

 

 

 

 

 

 

 

 

 

 

경복궁의 대문인 광화문에서만 사진을 많이 담았었네요. 한발자국 나가기 힘듭니다 ㅎㅎ 눈에 보이는 풍경들 하나 하나가 새로워 보여서 계속 셔터를 눌렀네요.

 

광화문을 지나면 보이는 또 다른 문인 흥례문~!

 

 

 

친구야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ㅋㅋ

 

 

 

 

 

흥례문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필요합니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했어용~!

 

 

 

 

 

잠시 흥례문을 등지고 광화문을 다시 바라봅니다.

 

다시 흥례문입니다 ^^;

 

흥례문

창건된 것은 1395년(조선 태조 4)으로,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중건하면서 청(淸)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인 홍력(弘歷)에서 홍(弘)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주변이 훼손되기 시작하였고, 1916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흥례문을 비롯한 주변 행각(行閣)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1990년 정부가 경복궁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역사바로잡기 차원의 일환으로 1996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뒤, 2009년까지 마무리되는 경복궁 복원사업의 5개 권역 가운데 침전(寢殿)·동궁(東宮)에 이어 3번째로 2001년 10월 26일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우면서 철거된 지 85년 만입니다.

광화문(光化門)과 근정문(勤政門) 사이에 있는 경복궁의 중문(中門)으로, 2층 목조건물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입니다. 주변 행각과 유화문(維和門)·기별청(奇別廳)·영제교(永濟橋)·어도(御道:임금이 드나들던 길)·금천(禁川:궁궐 안의 개천으로 御溝로 부른다) 등과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원래의 지반보다 1.5m 높게 지었기 때문에 복원 때는 경복궁의 본래 모습대로 1.5m의 땅을 파내고 근정문과 같은 높이로 하였습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6968&cid=40942&categoryId=33079

 

 

 

 

흥례문 안에 또 하나의 문, 근정문이 보이네요.

 

흥례문 앞에 경복궁의 전체적인 지도가 있더군요.

 

조선시대의광화문과 현대의 빌딩이 대조적입니다.

 

흥례문을 지나 영제교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영제교 안에는 한복을 입고 벚꽃과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척 많더군요.

 

 

 

 

 

 

 

 

 

 

 

 

 

 

 

 

 

 

 

 

 

 

 

 

 

 

 

근정문 사이로 저 멀리 국민민속박물관이 보이네요.

 

 

 

근정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 드디어 경복궁의 근정전을 마주합니다. 이 날 따라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보기 좋네요 ^^; 새로운 관광상품인가 봅니다.

 

근정전

1395년(태조 4)에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지어진 건물이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이 거행되었고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건물입니다. 1395년에 지은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것은 조선 말기인 1867년(고종 4) 11월에 흥선대원군이 136년만에 중건(重建)한 것입니다.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물로,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입니다.

이중의 월대를 설치하고 그위에 전각을 세웠습니다. 정면과 후면, 좌우 측면에 계단 설치되었으며 상, 하 월대에는 하엽동자를 받친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각 계단과 월대 모서리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하였고 정면 계단에는 석수를 조각하였고 답도에는 봉황을 새겨넣었습니다. 다포양식의 전각은  정면 5칸(30m), 측면 5칸(21m)의 중층 팔작지붕의 큰 직사각형 건물이다. 기단의 4면은 석란(石欄)으로 둘려지고, 월대가 있는 마당에는 박석을 깔았고, 월대 정면 계단 아래에서 근정문 방향으로 좌우에는 정1품에서 종9품까지 품계석(品階石)을 세웠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12개의 높은 기둥을 정면으로 4개, 측면으로 4개씩을 세워 천장을 받들게 함과 동시에 궁전 안을 중앙부의 내진(內陣)과 주위를 도는 외진(外陣)으로 구분하는 역할을 겸하게 했습니다. 중앙간 북쪽 후면에 방형(方形)의 보좌(寶座)를 두고, 그 단상에 어좌(御座)와 그 뒤에 일월오악(日月五嶽, 일월곤륜도)을 그린 병장(屛障)을 세우고, 그 위에 화려한 보개(寶蓋)를 달았습니다. 두공(枓栱  )은 상·하층이 외삼출목(外三出目), 내사출목(內四出目)이며 내출목에서는 수설(垂舌)이나 앙설(仰舌)이 구름무늬처럼 새겨진 운궁(雲宮)으로 되었고, 살미[山彌] 표면의 초화각무늬[草花刻文]나 단청(丹靑)·금색쌍룡(金色雙龍)과 조화되어 화려한 장식적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장식적 의장(意匠)을 마음껏 담고 있어, 다소 과식(過飾)의 감이 있기는 하나 조선 말기 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고, 당시 건축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표본적 건물입니다. 1985년 1월 8일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69635&cid=40942&categoryId=33079

 

 

 

 

 

 

처음 방문해보는 경복궁...사람에 치이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사실...한국인보다 중국인들이 더 많은 듯 해서...괜히 아쉬웠습니다.

 

경복궁 담벼락(?) 뒤로 보이는 빌딩들...

 

나무에 있는 까치집인듯 하네요 ^^;

 

 

 

 

 

근정전에 올라 광화문광장쪽을 바라보니...근정문, 흥례문, 광화문이 겹쳐 보이네요.

 

 

 

 

 

이름 모를 소녀들, 한복과 궁궐이 잘 어울리네요.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고궁이 있다는 것에 새삼 자부심이 생기네요.

 

 

 

근정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입니다.

 

 

 

근정전의 내부 모습입니다. 이 곳에서 조선의 왕들이 국사를 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근정전을 한바퀴 휘~이 돌아본 후 근정전 서쪽에 있는 경회루를 구경하려 합니다.

 

 

 

경회루 앞에 있는 수정전의 지봉사진을 마지막 사진으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 하려 합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서요 ^^: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ㅎㅎ

Part 2에서 보아용~^^

 

 

20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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