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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뷰 - 서울야경, 덕수궁야경, 고궁야경] 빌딩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고궁, 덕수궁의 야경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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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와봤습니다

는 덕수궁을 30년 가량 살면서 처음 와봤습니다.

 

시청, 광화문, 종로를 그렇게 돌아다녀는데도 덕수궁을 처음 와봤습니다.

 

한번쯤 다녀와볼 만한데도 왜 그 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여하튼, 언제부터인가 덕수궁 가봐야 하는데 가봐야 하는데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은표와 함께 다녀올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데이트 겸, 야경출사 겸 다녀왔지요 ㅎ

 

포스팅을 시작하기 전에 덕수궁에 대해서 한번 검색해봅니다.

 

 

서울 덕수궁

 

사적 제124호의 덕수궁은 본디 왕궁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집이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왕궁이 모두 불타서 1593년 행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조임금은 의주로 피난갔다가 한양으로 환도한 뒤 덕수궁에서 머무릅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고쳐부르고 7년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인 인목 대비만을 유폐시켰습니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의하고 창덕궁으로 옮긴 이후 270년 동안은 별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습니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요즘와서는 경운궁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요.

 

덕수궁에서 지난 날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 18,635평의 경내에 남아 있는 것은 대한문, 중화전, 광명문,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함녕전, 덕홍전 및 석조전 등에 불과합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1919년 1월 22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일제에 의해 독살당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3·1 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대한문 

 

대한문은 현재 덕수궁의 정문입니다.

 

이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고, 궁궐의 동문이었습니다.

 

대안문은 1906년에 다시 지으면서 '대한문'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현판 글씨는 당시 한성부 판윤을 지냈던 남정철이 썼습니다.

광명문

 

이 문은 왕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광무 8년(1904)에 큰불이 나서 타 버린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었습니다.

 

1938년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정동에 있던 홍천사의 범종과 창덕궁 보루각에 있던 자격루를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같이 옮겨 세웠습니다.

석조전

 

대한제국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곳입니다.

 

광무 4년(1900)에 착공하여 융희 3년(1909)에 준공한 석조 건물로, 조선왕조에서 마지막으로 지은 큰 규모의 건물이었습니다.

 

건물의 외관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했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정면에 있는 기둥의 윗부분은 이오니아식으로 처리하고 실내는 로코코풍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전체는 3층인데 1층은 접견 장소로, 반지하층은 시종인들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고, 2층에는 황제가 거처하였습니다.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함녕전

 

보물 제 820호로 지정된 함녕전은 1897년 건축하여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건물로, 1904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같은해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이 함녕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비어 있던 이곳에 당시에 사용하던 가구, 서화, 집기 등을 배치하여 100여년 전의 궁중 생활상을 새롭게 재현하였습니다.

중화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전으로 조선 제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의 근대 국가 건설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정전 안에서 어좌(御座) 바로 위의 닫집을 보면 용을 한 쌍 볼 수 있는데 이는 정전 천정의 용과 같은 문양으로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제의 황궁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중화전은 1902년에 중층으로 건립되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06년 단층으로 중건된 것입니다.

 

(토, 일 09:00~16:00까지 개방)

중명전

 

중명전(重明殿)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Seredin Sabatin)의 설계로 1897년부터 1901년에 걸쳐 건립된 황실도서관입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서양식 건물로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습니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 평일 : 오전 자유관람, 오후 1시, 2시, 3시, 4시(오후 시간 인터넷 사전 예약제 필수)


- 주말 : 오전 10시,11시, 오후 1시, 2시, 3시, 4시(오전, 오후 시간 인터넷 사전 예약제 필수)

그 밖에 석어당, 준명당, 즉조당, 정관헌, 덕홍전, 보루각 자격루 등이 있습니다.

 

 

 

관련사이트  

 

덕수궁 http://www.deoksugung.go.kr

 

네이버캐스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2273&cid=371&categoryId=416

 

 

 

 

 

설명이 이리 길 줄은... ㅋ

 

여하튼, 이 날 담았던 덕수궁의 야경 출사 결과물을 공개합니다. ㅋ

 

 

 

 

 

 

 

 

 

 

 

 

 

 

 

 

 

 

 

 

 

 

 

 

 

 

 

 

 

 

 

 

 

 

 

 

 

 

 

 

 

 

 

 

 

 

 

 

 

 

 

 

 

 

 

 

 

 

 

 

 

 

 

 

 

 

 

 

 

 

 

 

 

 

 

 

 

 

 

 

 

 

 

 

 

 

 

 

 

 

 

 

 

 

 

 

 

 

 

 

 

여기 덕수궁은 다른 고궁들과는 달리 평소에 오후 9시까지는 야간개방을 하는 고궁입니다.

 

저 또한 평일날 다녀왔었구요.

 

이렇게 저녁 9시가 되서야 은표와 함께 덕수궁을 나왔습니다. ㅎㅎ

 

예전에 경복궁 야간개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여유있게 사진을 찍었었습니다.

 

너무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사진을 많이 못 담았더라구요.

 

이 날이 처음이였지만, 두번, 세번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다음에는 덕수궁을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는 포인트를 알아봐야겠어요.

 

그럼, 이만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201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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