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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뷰 - 강릉야경, 경포대야경] 늦은 저녁 강릉 경포호의 경포대에서 야경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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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에 처음 와봤네요

없이 강릉을 오갈때마다

 

경포호의 옆의 도로만 다녔지, 이렇게 주차하고 경포대 위로 올라와 본 것은 처음이였습니다.

 

정작 경포대에 아는 것이 너무 없었네요.ㅋ

 

 

 

경포대

 

동해안 해수욕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경포해수욕장을 찾는 이는 매년 수십만 명에 이르지만 정작 ‘경포대’를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개 호수를 바라보며 차로 달려 잠깐 사이에 해수욕장에 닿기 때문인데,

 

호숫가 동북쪽 찻길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경포대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벚나무 숲에 가려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지요.

 

실은 푸른 동해 바다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놓치는 이유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 강릉 경포대에 와서 정작 ‘경포대’를 보지 못한다면 알맹이는 놓치고 겉만 훑고 가는 큰 아쉬움이 남게 될 것입니다.

 

 

정면 6칸에 측면이 5칸, 대청을 받치는 기둥이 28개나 되는 당당한 규모의 경포대는

 

팔작지붕으로 지은 익공계 양식의 누대로, 관동팔경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경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큰 현판은 암묵적으로 그 명성을 뒷받침해줍니다.

 

기실 삼척의 죽서루에도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이 있어 ‘제일’이란 말은 붙이기 나름이겠다 싶지만,

 

각각 주변 환경도 다르고, 또 설사 어느 편이 좀 처진다 하더라도 그 정도야 제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충정으로 어여삐 봐줄 만한 치사라고 생각됩니다.

여하간 경포대는 바다와 호수를 한아름으로 안고 있는 빼어난 경치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경포대 유감(有感)이 경포대 누각 안에 현판으로 걸려 있습니다.

 

 

 

 

 

우선 ‘경포대’(鏡浦臺)라는 현판은 전서체로 쓴 것과 해서체로 쓴 것 두 개가 있습니다.

 

전서체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쓴 것이고, 해서체는 조선 순조 때 승지를 지낸 명필 이익회가 쓴 것입니다.

 

‘제일강산’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 또는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인 양사언이 썼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고,

 

뒷부분의 파손된 두 글자는 후세 사람이 써서 덧붙인 것이라 합니다.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500&cid=748&categoryId=2071

 

 

 

 

 

강릉 여행때 야경 뭐 담을 만한게 없나 싶어서 가보았는데요.

 

소소하고, 정막한 것이 나름 운치가 있었습니다. ㅋ

 

 

 

 

 

 

 

 

 

 

 

 

 

 

 

 

 

 

 

 

 

 

 

 

 

 

 

 

 

 

 

 

 

 

 

 

 

 

 

 

 

오히려 사람이 너무 없어서,

 

내가 여기서 촬영을 해도 되나 싶었네요 ㅎ

 

경포대도 담고, 내려와서 차량 궤적도 담아보았습니다.ㅋ

 

 

 

 

 

20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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