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셋 리미티드 The Sunset Limited (2011)

반응형
 
자살해도 됩니까?






뉴욕의 어느 지하철역선셋 리미티드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전직 교수(토미 리 존스)를

어느 회사의 노무자로 일하는 듯한 사람(사무엘 잭슨)이 구해서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온다.

백인인 전직 교수는 무신론자에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졌고

흑인인 노무자는 예전엔 험하게 살았으나 독실한 개신교 신앙을 가졌고

하느님이 자신에게 바라는 바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배경도, 현재의 처지도, 세계관도 전혀 다른 이 둘이 신과 세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사이렌 소리, 귀를 자극하는 갖가지 기계음, 짤막한 외마디 소리와 뒤죽박죽 들려오는 인간들의 음성...

도시의 각종 소음을 뚫고 열차가 빠른 속도로 플랫폼을 지나치고 있다. 

선셋 리미티드 (The Sunset Limited). 

수백가지의 암트랙 (Amtrak) 중 하나로 일주일에 3번 마이애미와 로스앤젤레스 사이를 오가는 열차다.

 

터널을 지나 어둠을 사이에 두고 공간이 바뀌었다. 그러나 소음은 여전하다.

이곳은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는, 누추하고 적막한 어떤 공간...

실내 집기들과 소음의 내용으로 미루어 70년대 혹은 80년대, 슬럼가에 위치한 허름한 단칸방인 듯하다.

희고, 검은 늙은 두 남자가 그 답답한 공간속에서 뚱하니 마주하고 있다. 이어 뜬금없이 시작된 대화...


         B / 이제 뭘할까요, 교수님...

         W / 왜 뭘 해야 하죠 ?

         ......

         B / 어쨌거나 아침에 출근할 땐 계획에 없었던 당신이 이렇게 여기 있잖소...

         W / 아무 의미 없는 거요.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B / 그럼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W /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잖소. 우연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만났지만 당신 책임은 아니란 거요.

          B / 으흠....

참다 못한 화이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러자 블랙도 따라 일어선다. 화이트는 피곤하니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 하는데 블랙은 그럼 그의 집까지 따라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화이트는 정말로 그것을 원치 않는다. 얼마간의 실랑이 후  화이트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생뚱맞은 이야기들...         

 

        W / 정말로 예수가 이방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B / 아뇨. 생각이 아니라 느끼고 있지요.

참다 못한 화이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러자 블랙도 따라 일어선다. 화이트는 피곤하니 그만 집으로 가야겠다 하는데 블랙은 그럼 그의 집까지 따라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화이트는 정말로 그것을 원치 않는다. 얼마간의 실랑이 후  화이트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생뚱맞은 이야기들...         

 

        W / 정말로 예수가 이방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B / 아뇨. 생각이 아니라 느끼고 있지요.

  

분위기로 보아 화이트맨은 지금의 대화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러나 블랙맨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집요하게 이야기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B / 간밤에 잠은 잘 잤습니까?

        W / 아뇨.

        B / 오늘 하겠다고 언제 결정했소?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W / 없소. 내 생일이긴 하지만 무슨 특별한 일은 아니지...

        B / 축하해요. 교수님...

       B / (성서) 왜 안 읽었죠?

       W / 그거야 모... 좋은 책이 워낙 많아서...

       B / 예를 들어?

       W / '전쟁과 평화'

       B /그게 이 책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하오?

       W / 글쎄... 종류가 달라서...

       B / 전쟁과 평화는 픽션이지요? 그래서 종류가 다르다는 거요?

       W / 아니죠.. 내가 보기에 둘 다 지어낸 책이요.

       B / 둘 다 사실이 아니라고요?

       W / 역사적으론 사실이 아니지요.

       B / 그럼 사실인 책(True Book)은 어떤 게 있지요?

       W / 역사책들이겠죠. 가령 기번(Edward Gibbon)이 쓴 '로마 제국 흥망사' 같은...

       B / 흠... 평생 4000권이 넘는 책을 읽은 당신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책을 읽지 않았군요.

       .....

       W / 성서란 경고성 메시지로 가득찬 문학작품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말하지요.

              뭘 조심하냐고? 방향을 잘못 틀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걸... 세상에 그런 얼마나 많죠?

              수도 없이 많을 거요. 그런데 옳은 길은? 딱 하나! 그래서 당신말은 균형이 안 맞아요.

블라블라... 하나마나한 대화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왠지 정체가 궁금해지는 두 남자. 오지랖 넓은블랙은 현재 철도공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과거 끔찍한 결혼경력과 그에 못지않은 흉악한 범죄이력을 갖고 있으나 신과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종교도 친구도 없는 화이트는 전직 교수로 한때 문화중독자였으나 지금은 만사가 시쿤둥... 그저 하루빨리 영원한 휴식을 얻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태생이나 성장배경이 완전히 대조적인 두 남자가 마주 앉아, 근본적으로 합의점을 찾기도 힘든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블랙의 선의에 의한 집요함에 못이겨 화이트는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쨌거나 비행청소년마냥 보호자가 딸린 채 거리를 나설 순 없는 일이므로...

                B / 그럼 이제 당신 세상은 어떤지 말해보시오.

      W / 듣고 싶지 않을거요.

      B /  듣고 싶소.

      W / 아닐걸요.

      B /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봐요.

      W / 좋아요. 그 세상은 기본적으로 강제노동 수용소요.

             아무 잘못도 없는 그 노동자들은... 제비뽑기로 불려나가죠. 매일 몇 명씩 처형당하기 위해서...

             나만 그렇게 보는 게 아닐거요. 세상이 원래 그 모양이요. 다른 관점도 있다고? 물론 그렇겠죠.

             그런 것들 중 말이 되는 게 있냐고? 없다고 봐요...

 

대화는 갈수록 점입가경, 고집불통의 두 남자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방을 몰아부치고 있다.

서로가 상반되는 소망을 가졌으니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죽느냐, 말리느냐... 신념이나 자존심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다.

그러니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기 전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이 지리멸렬한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두두두둥....

코맥 맥카시 (Cormac McCarthy) 원작, 토미 리 존스 감독 ,주연. HBO에서 방영된 TV용 영화다. 그럼 그렇지, 저걸 개봉한다면 누가 얼마나 볼까 싶었다. 하긴, 초저예산 영화이니 큰 손해야 보지 않겠지만...

하나의 세트에서 두 명의 연기자가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내는 무쟈게 잔잔하고 단촐한 영화다. 유사한 컨셉으로 추적(Sleuth, 2007), 127시간(127 Hours, 2010) , 베리드(Buried, 2010)... 등이 있지만 저렴한 예산으로 치자면 이 영화 따라올 게 없을 거 같다.

하지만 잔잔하긴 하되 결코 지겨운 영화는 아니다.(물론 보다가 졸 수는 있지만...) 그리고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흥미롭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새롭지도 않은 돈한푼 안될 영화를 용감하게 만든 이들이게 일단 박수 짝! 짝! 짝!)

신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종교를 떠나  인류가 긴 세월동안 가장 찝쩍대기 좋아하던  화두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재의 소설, 영화, 연극 등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될지 약간이나마 짐작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전개방식은 약간 독특하다. 따라서 영화를(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을(이토록 단순한 설정만으로 어떻게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좀 더 눈여겨 보면 훨씬 더 쏠쏠한 재미를 건질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면에서 국내의 영화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싶다. (솔직히 우리나라 영화들은 대사에서 너무 건질 게 없다. 논리는 별로 없고 감성은 지나치게 넘친다.) 또 본인 스스로도 느낄 정도로 대화의 기술에 약하다거나 논리가 부족하다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더 없이 훌륭한 교재가 되리라고 본다. 이 영화 한편으로 변증법, 아니 문답법의 진수를 얼마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 (단,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 자살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라면 좀 자제하는 편이....)

.... 라고 해도 물론 모든 게 속시원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난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정도는 알고 있었어, 라고 할만한 대화들이 오고가기 때문에 획기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볼 수는 없다. 아무렴.... 그 거대한 화두가 단숨에 해결되겠는가. 물론 단숨이 단숨은 아닐 것이다. 겨우, 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건 아마도 원작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던 걸 평생을 걸쳐 스스로 묻고 답해오면서 도달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의 흑과 백은 찢어져 나뉘어진 한 사람의 분절된 인식, 자기 안의 오락가락하는 견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원작자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신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논쟁이라기보다 과연 그것이 있따면 과연 얼마나 신뢰감이 가는 존재인가. 찬양의 대상인가 아니면 증오의 대상인가를 따져 묻고 싶었던 거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왜?라고 따져 묻는것, 불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그것의 존재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칠순을 넘긴 이 노련한 원작자는 '촌뜨기 무신론자의 논쟁'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 무얼 하소연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살해도 됩니까?

비지스 닮은 아저씨를 흠모하지 않아도, 모세의 돌판때기, 단테의 지옥불을 염두하지 않더라도...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누군가 나타나 쓸만한 '속임수 보따리'를 풀어주기를... 해선 안되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길 기대할런지도 모른다. 허나 인간들이 품고 사는 보따리란 대게 노숙자 발싸개 비슷한 것이어서... 제아무리 모건 프리먼 닮은 머시기가 나타난다 해도 산뜻한 답을 들려 주긴 힘들 것이다. 꺼져가는 마술사의 촛불같은 삶, 안락사조차 용납이 안되는 사회지만...

화이트를 만나게 되면 나는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양이를 한번 키워 보세요... 라고.....

죽은 자들은 말이 없으니.... 자살 후 혹시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라고 물어볼 수는 없고...

틈만 나면 자살을 꿈꾸었으나 바빠서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 볼 수는 있겠다.

그때 해내지 못한 게 못내 후회가 되던가요? 라고... 모르긴 몰라도 그렇다고 하는 사람 썩 많지는 않을 거 같다. (결혼과는 반대로 해도 안 후회, 안해도 안 후회... 일듯) 그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 후회돼서 미치도록 약이 오르면 그때 가서 하면 된다.

'성분'을 떠나... 젊었을 땐 늙어 하는 자살은 왠지 좀 한심하게 생각됐었다. 그런데 늙어 보니... 그도 별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면 언제든 열어 보일 수 있는 비장의 카드, 최후의 보류, 마법의 구슬 주머니 같은 든든한 그 무엇...

그러니... 화이트...

급할 거 없잖아요. 월가에서 무슨 재미난 일이 일어날지 구경도 좀 하고...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isant&logNo=10123232499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