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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을 보고 문득 [병자호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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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충...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해, 그 당시 왕이였던 인조가 백성을 버렸었다는...
어렸을 적 배운 국사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만은...좀 더 디테일하게 궁금해져 검색을 해 보았다.

뭐 네이버 백과사전을 비롯해서, 여러 글들을 읽었지만...
씁쓸한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쳇...내가 아는 내용과 모두들 비슷한 정도이다. 더군다나..왕이 백성을 버리고 강화도로
갔다는 사실을 별로 자꾸 듣고 싶지 않았다..ㅡㅠ


간단히 정리하자면, 어느 분의 블로그에 간단명료하게 된 포스팅이 있어 퍼왔다.
백과사전 같은 곳에서 찾으면, 좀 더 자세하고 좋긴 하나...한자가 많아서 읽기 싫어지니까 ㅋ


병자호란의 원인
  임진왜란때 조선을 도왔던 명나라의 군사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명나라 위에 있던 여진족이 세운 후금 이라는 나라가 명나라에게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고, 명나라는 조선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조선의 광해군은 지원해주는 척 하다가 여진족이 세운 후금과 친선을 도모했었다. 이를 반대했던 조선의 멍천한 간신들이 광해군을 쫒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우게 된다.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은 조선에게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인조가 왕으로 있었던 조선은 이를 거절하고, 여진족을 야만족이라 멸시하고 꺼져가는 불씨 같은 쇠퇴기의 명나라를 섬기는 정책을 폈기때문에..병자호란이 발생한 것이라 한다.


병자호란의 과정

 


  조선은 10만의 청나라 군에게 밀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대항을 하였으나...45일만에 청에게 항복을 하게 된다. 결국 청나라와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맺게 되고, 인조라는 임금은 남한산성에게 청나라에게 세 번씩이나 엎드려 절을 하는 [삼전도의 굴욕-조선은 청의 11가지 요구를 들어줌과 동시에 이른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된다. 한번 절할때 마다 이마를 땅바닥에 세번 부딪치기를 세번 반복하는 '삼배구고두' 라는 항복례을 올렸다고 합니다. ] 수모를 겪었다.  소현 세자와 봉림대군과 수많은 궁녀들까지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게 됩니다.



병자호란의 결과
  조선 임금인 인조의 삼전도에서의 항복으로 청나라의 직간접적인 내정 간섭을 받게 되고, 또한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었으며, 백성들의 사림도 많이 어려워지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정말 간단하게 정리했지만은...정말 굴욕적인 역사적 순간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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