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자가용타고 나홀로
해안선따라 전국일주 Part 10
2013/5/15
예전에서 해남에서 아침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요. ㅎㅎ
해남은 더이상 볼 것이 없어 사진만 몇장 담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썰물때였나보네요.
물이 다 빠졌군요 ㅋ
예전에 왔을때는 공사중이였는데,
이 때는 완공을 했었나봅니다 ㅋ
도르를 조금 달리다가 만난 땅끝쉼터에서 한번 정차했어요.
남해의 바다는 동해, 서해바다와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어요 ㅎㅎ
차분함? ㅋ
열심히 일하는 중인 개미들 ㅋ
푸르네요 ㅎ
전봇대도 이제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들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남쪽의 농촌의 모습이 괜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왜일까요?
설렁 설렁 움직이다 보니 완도에 도착했군요. ㅎ
완도대교를 건너자 마자 잠시 원동선착장에서 정차 한 뒤 풍경사진을 담아보았습니다.
원래는 완도도 한바퀴 둘러보려 했었습니다 .
하지만, 사진을 찍다보니...음...차라지 안가본데를 가보자 해서
완도대교를 건너자 마자 다시 또 밖으로 건너갔습니다. ㅎㅎ
이곳 완도 예전에 은표와 함께 여행온 적이 있어서 링크 걸도록 하겠습니다. ㅋ
그리고, 저는 바로 강진의 다산초당으로 향했습니다.
저 공룡그림 보이시나요? ㅎㅎ
저기가 뭔지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그냥 지나쳤네요 ㅎ
강진 다산초당
오늘의 포스팅 주제인 강진의 다산초당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저는 정약용의 업적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많은 공부가 저절로 되더구만요 ㅋ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지요.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생활하시는 동안『목민심서』『경세유표』등 5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하였고 그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습니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의 재취가 남아있는 다산4경이 있습니다.
다산선생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다산은 1818년 57세로 강진에서 유배가 풀려나 고향 마재로 돌아가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다산의 독백서를 보면 고향에 가서도 다산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관련사이트 - http://gangjin.go.kr/tour
참새들이 너무 많고,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참새사진만 찍고 있었습니다. ㅋㅋ
다산초당의 기념관에서 정양용 선생님의 업적, 일생에 대해
약간 경험하였다면, 이제는 생가르를 찾아 한번 가보겠습니다.
산길을 조금 걸어야 합니다. ㅎ
가는길에 만난 수탉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ㅋ
가는 길 마저 뭔가 신비롭네요 ㅎ
나무 뿌리가 계단이 되어 있을 줄이야... ㅋ
개인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사람들의 발길이 적당히 있는 것 같아 왠지 안심이 됩니다. ㅎㅎ
특히 정석 같은 경우는 누가 훼손할까봐 괜히 제가 걱정이 되더군요.
지금은 이렇게 문화재가 되어 있지만,
정약용선생님이 이 곳에 살고 싶어서 살았던 곳이 아닌 말 그대로 유배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많이 외로웠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제 설레발은 이정도까지만 하고 이제 이 곳을 떠나려합니다. ㅎ
다시 제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언제 돌아가지...ㅜㅠ
돌아가는 길에는 아까보다 많은 닭들이 보이는 군요 ㅎㅎ
이 넘들이 바로 토종닭들인가 봅니다.
가까이서 보면 털의 윤기가 장난이 아니였어요 ㅎ
자아~~ 오늘은 이렇게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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